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발칸 전쟁 (문단 편집) === 런던 강화조약: 1913년 5월 30일 === 전세가 불리함을 느낀 오스만 제국은 결국 1913년 5월 30일에 [[런던]]에서 강화 조약을 맺었다. 그 결과 오스만 제국은 에노스-미디아 선으로 [[이스탄불|코스탄티니예]]와 그 주변[* 현재의 이스탄불 광역권.]을 제외한 유럽의 모든 영토([[트라키아]], [[크레타]] 섬까지 포함)를 상실하였다. [[에게해]]의 모든 섬들, 심지어 터키 본토 바로 앞바다의 섬들까지 모두 그리스 영토가 된 것도 이 전쟁 때문이다. 그리하여 해군력 강화의 필요성을 느낀 오스만 제국이 무리하게 [[프랑스]]에게서 차관을 얻어가며 영국에 '''[[전함]]''' 2척을 주문했으나 제1차 대전이 터지면서 당시 영국의 해군 장관 [[윈스턴 처칠]]은 일방적으로 그 두 척을 [[압류]]하였다.[* 여기에도 영국 나름대로 할 말은 있지만 지금까지도 욕을 먹고 있다.] 강탈당한 함들은 [[HMS 애진코트]]와 [[HMS 에린]]으로 명명되었고, 오스만 제국은 크게 분노하였다. 때마침 이를 이용해 독일이 [[영국 해군]]에 막혀 본국으로 귀환시킬 수 없게 된 [[지중해]] 파견대의 [[몰트케급 순양전함|순양전함 1척]]과 [[경순양함]] 1척을 오스만 제국에게 무상으로 넘겨준다며 꼬드기는 바람에 오스만 제국이 제1차 대전에 참전하게 되기도 하였다. 물론 저 2척을 준다고 꼬시기만 한 건 아니고, 다짜고짜 코스탄티니예 항에 정박한 군함 2척이 입으로는 치켜세워 주면서, 실제론 함포를 황궁에 겨누고 있는 상황이었다. 어이없이 수도를 제압당한 꼴이 된 후, 터키는 수도를 내륙의 앙카라로 옮긴다. 약체화된 국력으로는 이스탄불을 지킬 해군 양성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